제목 | [ 고향(故鄕)과 본향(本鄕) ] 3. 내가 돌아갈 본향(本鄕) | 공지일 | 2023.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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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故鄕)과 본향(本鄕) ] 3. 내가 돌아갈 본향(本鄕) 아~~~!! 큰일이다~!! 이를 어쩌나~~!! 앞이 캄캄하다~~!! 참으로 난감(難堪)하고 난처(難處)한 일이 아닌가~~!! 본향이라~?? 어떻게 내 입에서 본향이란 말이 불쑥 튀어 나왔을까~?? 어떻게 풀어야할지, 무슨 말로 시작할지 참으로 고민(苦悶)된다~!! 왜 평소(平素) 사람들이 쓰지도 않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인 본향이~~?? 참으로 낯선 본향이란 말이 생뚱맞게 고향과 대비(對比)되며 나왔을까~!! 고향이란 말에 무심(無心)코 반사적(反射的)으로 튀어나온 말이~, 본향~?? 어쩌면 내 마음속에 항상 내재(內在)해 있던 생각이 의도적(意圖的)으로~?? 아마도 이 세상에서의 고향(故鄕)과 친구(親舊)와 가족(家族)은, 또 그러한 기억(記憶)들은 분명 사라지기에, 또 이러한 사실(事實)과 현실(現實)을 우리가 감내(堪耐)해야 할 운명(運命)이고 숙명(宿命)임이 안타깝고 안쓰럽고, 못내 아쉬운 점으로 잊지 못하고 떨쳐버릴 수 없는 미련(未練)으로 미제(未濟)로 남아 있기에~~!! 사람의 일생(一生)을 크게 몇 가지로 분류(分類)해 보면, 유아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이렇게 구분할 수 있겠는데, 이는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익어가는 생애(生涯)별 구분이며, 고향이라 하면,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한 곳이 어딘가에 따라, 다시 말해 청소년기(靑少年期) 때까지 주로 생활한 곳이 고향으로 정해지는 것이 보편적(普遍的)으로 통용(通用)되는 타당(妥當)한 기준(基準)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정선군 임계면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까지 살았고, 초등학교 입학기에 맞춰 강릉으로 이사(移徙)하여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강릉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혼자 서울로 상경(上京)하여 직장(KEB)에 다니다 군(軍)에도 갔다 오고 결혼(結婚)하여 남매(男妹)를 낳아 지금까지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나의 고향은 어디냐고 물으면 태어난 임계도 아니고, 직장 다니며 결혼하고 현재까지 계속 사는 서울도 아닌 강릉(당두)이라고 주저치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이는 내가 태어난 곳보다는, 또 성년(成年)이 된 이후 사는 곳보다는, 성년이 되기 전, 철들기 전, 내가 천방지축(天方地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라고 성장(成長)한 곳이 나의 삶에 있어서 정서적(情緖的)으로나 인격적(人格的)으로 상당한 영향(影響)을 끼쳤던 곳이기에 고향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친구(親舊)라면 대부분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이고 서울에 현재 약 60여 명이 살면서 동기(同期) 동창회(同窓會)를 통해 주기적(週期的)으로 만나면서 교제(交際)하고 있다. 물론 가장 친한 친구도 이 속에 있다. 내 부친(父親)은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에서 나서 살면서 고등학교 때 강릉으로 혼자 유학(留學)(?)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조부(祖父)께서 사고(事故)로 일찍 작고(作故)하심으로 인해 대학진학을 포기(抛棄)한 후 가업(家業)을 이어받기 위해 조기(早期) 결혼(結婚)하여 임계에서 양조장(釀造場)을 운영하시다, 나의 초등학교 입학시기에 맞춰 강릉으로 이사하셨다. 그리하여 부친의 고향은 임계, 강릉보다는 속사라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하지만 작고(作故)하신 부친께서는 강릉이라고 하지 싶다. 여담(餘談)이지만 부친께선 강릉 유학(留學) 시절, 나의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담임이셨던 선생님 댁(宅)에서 하숙(下宿)하시며 담임선생님의 과외 선생이셨다는 얘기를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연(偶然)히 부친께 듣곤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내 증조부(曾祖父)께서 군수(郡守)셨다는데, 이로 미루어 추측(推測)하건대 부친께선 어려선 도련님으로 자랐고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하고 꽤 유능(有能)하셨음에도 진학(進學)=출세(出世)를 포기하고, 양조장을 운영하시다 말아먹고 농부(農夫)로 사시는 걸 창피(猖披)하게 여겨 자존심(自尊心)도 상(傷)하기에 침묵(沈默)하고 계시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다가 내가 KEB 입행 시험(試驗)에 당당히 합격(合格)하여, 어려운 관문(關門)을 뚫고 KEB Man이 됨에 따라 그나마 자존심이 회복(回復)되고 자긍심(自矜心)을 느껴 그동안 말하지 못한 침묵을 깨고 내게 말해 주지 않았을까 짐작(斟酌)해 본다. 이로써 부모님께 작게나마 보은(報恩)도 하고 효도(孝道)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慰安)해 본다~^^!! 한편 부친께선 조부께서 사고로 일찍 작고하심으로 인해 진학(進學)을 포기(抛棄)하고 조기 결혼하여 사업하신 걸 가끔 후회(後悔)하시면서, 고등학교 동창 누구는 시장, 군수, 서장 등을 하는데 본인은 사업을 하다 말아먹고 농부(農夫)도 아니면서 농부로 사는 걸 동창회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혼자 술로써 회포(懷抱)를 푸시며 몇 날 며칠을 술에 취해 계시곤 하셨는데, 이로 인해 장남인 내가 어린 나이에 고생(苦生)하시는 모친(母親)을 도와 꼴을 베어 소를 키우며 외양간 소똥도 치우고 밭에 풀을 뽑는 등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특히 중학교 때 비 오던 날 혼자 밭의 잡초를 뽑고 밭을 매면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땀인지 연신 얼굴을 훔쳤던 기억은 제법 당당하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 본향(本鄕) 얘기를 해야 하는데 돌고 돌아도 한참을 돌았다. 그러니까 본향은 고향보다 앞서 살았던 곳, 내 시조(始祖)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던 곳~~?? 외지(外地)로 떠나갔던 사람들이 시조가 처음 터를 잡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곳이라 할 수도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우리 말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과연 어디로 돌아가셨는지~~?? 사람이 죽어서 돌아간 곳이 소위(所謂) 본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내 조부와 조모는 돌아가셨고 내 부친과 모친 또한 돌아가셨다. 그 선대(先代)는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다 돌아가셨다. 우리 조상(祖上)님들의 장지(葬地)는 평창 속사 선산(先山)에 집중(集中)돼 있다. 그러면 우리 조상님들이 묻혀 있는 곳을 과연(果然) 본향이라 할 수 있고, 본향으로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내 조모님과 부모님은 불교(佛敎)의 장례법(葬禮法)과 유언(遺言)에 따라 시신(屍身)을 화장(火葬)한 후 뼛가루를 선산(先山)이 아닌 야산(野山)과 강(江)과 바다에 뿌렸다. 선산에 묻히지 않았다고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할 수 있을까~?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는데, 즉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지는 본적도 확인한 적도 없으니 미확인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성경에 보면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경이 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과연 인간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인생이나 짐승이나 일반(一般)으로 육체(肉體)는 흙으로 돌아가고, 인생(人生)의 혼(魂)은 위로(하늘)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감 (전도서 3:17-21) 17. 내가 심중(心中)에 이르기를 의인(義人)과 악인(惡人)을 하나님이 심판(審判)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試驗)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에게 임(臨)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同一)한 호흡(呼吸)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리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人生)의 혼(魂)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 십자가에 매달려 회개(悔改)한 죄인(罪人)이 예수님과 함께 거할 낙원(樂園)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樂園)에 있으리라” ▶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가셔서 예비하시는 거처(居處) (요한복음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居)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居處)를 예비(豫備)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迎接)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하나님이 경영(經營, architect & builder)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城, city) (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네 순종(順從)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外邦)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寓居)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帳幕)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城)을 바랐음이라” ▶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며 죽었으나 본향(本鄕)을 바라봄 (히브리서 11:13-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約束)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歡迎)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本鄕)을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 사모하는 더 나은 본향, 곧 하나님이 하늘에 예비하신 성(Country), 하늘나라 (히브리서 11:15-16)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城)을 예비하셨느니라” ▶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생(永生)할 하나님의 낙원(樂園)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聖靈)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하리라” ▶ 눈물, 사망, 애통, 곡, 아픔이 없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하늘나라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삼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新婦)가 남편(男便)을 위하여 단장(丹粧)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寶座)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帳幕)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死亡)이 없고 애통(哀痛)하는 것이나 곡(哭)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萬物)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信實)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生命水)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遺業)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凶惡)한 자들과 살인자(殺人者)들고 행음(行淫)자들과 술객(術客)들과 우상(偶像)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參預)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聖殿)이시며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된 자만 들어가는 성전, 거룩한 성 예루살렘(the Holy City, Jerusalem) (요한계시록 21:22-27) 22. 성(城, city)안에 성전(聖殿, temple)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萬國)의 영광과 존귀(尊貴)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俗)된 것이나 가증(可憎)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 성경은 인생(人生)이나 짐승이나 다 동일(同一)한 호흡(呼吸)이 있어서 짐승의 죽음같이 인생도 죽으매 인생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다고 말하면서, 인생의 육체나 짐승의 육체나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짐승의 혼(魂)은 아래로 곧 땅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며, 반면 인생(人生)의 혼(魂)은 위로 올라가는데 그곳이 본향(本鄕)임을 곧, 예수님이 부활(復活) 승천(昇天)하여 예비하시는 거처(居處)가 있는 곳이고,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시는 터가 있는 성(城)이며,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사망(死亡)이나 애통(哀痛)하는 것이나 곡(哭)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없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임을 말하고 있다. 또 세상의 유혹(誘惑)과 시험(試驗)을 이기고 견뎌낸 자들에게는 생명(生命) 나무의 열매를 주사 먹게 하심으로 영생(永生)하는, 하나님의 낙원(樂園)임을 말씀하고 있다. 한편 성경 요한계시록 21:8에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凶惡)한 자들과 살인자(殺人者)들과 행음자(行淫者)들과 술객(術客)들과 우상(偶像) 숭배자(崇拜者)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硫黃)으로 타는 못에 참예(參預)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死亡)이라” 하며, 불신자(不信者)들과 죄인(罪人)들은 모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심판(審判)을 받게 됨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